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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을 일출로

by 열린문 posted Jan 02, 2019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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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일몰을

일출로 바꾸어 놓으셨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가장 귀중한 헌금

by 열린문 posted Jan 09, 2016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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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부넬 에드워드와 관련된 감동적인 글이 <가이드포스트>에 실렸습니다. 어느 주일 예배 때 있었던 일입니다. 분명히 헌금 시간이 끝났는데도 다시 헌금 주머니가 도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해하는 교인들에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내용을 쪽지에 써서 헌금 주머니에 넣으십시오.” 

 

에드워드의 집은 대가족이라 살림살이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웃을 위해 짬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쓰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무엇을 쓸까 한참 망설이다가, “외로운 사람에게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라고 쓴 쪽지를 헌금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쪽지가 하나님께 헌금으로 드려졌다고 생각하자, 그 일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정말 외로운 이웃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차 대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시간이 많아지자 남의 집 정원을 손질해 주기도 하고, 이웃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난 후, 그 주일 예배 때 첫 번째 헌금주머니에 자신이 얼마의 돈을 넣었는지는 기억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주머니에 넣었던 자신의 삶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헌금임을 확신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첫 번째 헌금도 물론 중요하지만, 진정한 예배자는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두 번째 헌금, 곧 삶의 헌금까지 기꺼이 드립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참되다고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요한과 더불어 - 세 번째 산책 중에서 ]  이재철 목사




하나님은 헌법이 아니라 성경으로 심판하신다!

by 열린문 posted Jul 02, 2015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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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메가처치 '포터스하우스(The Potter's House)'의 설립자요 담임목사인 T.D. 제이크스(T.D. Jakes) 목사는 연방대법원에 의한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제이크스 목사는 "연방대법원은 헌법에 기초해 판결을 내렸고, 특정 이슈에 대해 헌법적으로 토론한다"면서 "하지만 여러분에게 엄중하게 경고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여러분을 헌법으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말씀(성경)으로 심판하신다. 따라서 연방대법원이 열심히 헌법을 들여다보는 동안 당신은 성경을 열심히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손으로 성경을 들어 올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오래됐지만, 이 축복된 말씀은 여전히 좋고, 여전히 옳다"고 강조했다.

 

앞서 제이크스 목사는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동성간 성관계는 성경에서 정죄하고 있으며, 따라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에 따라 말할 수 없고, 성경이 말하는 것에 따라 말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는 또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 25명 중 한 명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타임지와 CNN은 그를 미국 최고의 설교자로 꼽았다. 또 베스트셀러 작가에 영화 제작자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에 동성결혼 합법화를 사실상 주도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릭 워렌 새들백교회 목사와 함께 행동하는 기독교인이라고 칭한 것은 물론 대선 기간 중 자신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기도요청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존경하고 있다.                  (기독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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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과정을 마치며

by 열린문 posted Jul 02, 2015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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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과정을 목사님과 함께 공부를 하였습니다.

저한테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한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중간중간 아주 열심히 교회 예배도 참석하고 봉사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세상 일이 우선이 되어 예배를 소홀히 하고 주님을 건성으로 믿었습니다.

교회에 잘 안 나가면 죄 받을 것 같아 그저 걸쳐 놓은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지금에서야 정말 주님을 제대로 믿으려고 합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전 여태껏 제 삶의 1번이 주님이 아니었습니다. 허나 지금은 주님이 1번이시라고 기도합니다. 1번이 되시게 그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정말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삶(주님의 방식)을 살아야 한다고 깨닫고 기도합니다.

먼저 떠돌이 신자가 아니라 너무 감사드립니다. 열린문교회 소속이 되어 예배 드릴 수 있어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또 사모님과 교제하면서 은혜 받고 마음의 평화도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어 기쁘고 너무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잘 믿는 사람이 되리라 늘 기도합니다. 저에게 이렇듯 큰 깨달음을 일깨워 주신 성령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 합하여지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모든 걸 제가 알게끔 도와주신 목사님, 사모님, 대구에 있는 친구 김소희에게 감사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실천해야 하는 일들은 주일을 꼭 성수할 것이며 QT를 할 것을 주님 뵈오는 날까지 꼭 이행하겠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역 또한 잘 감당할 수 있는 믿음과 또 열린문교회 가족 여러분과 교제하면서 더 성숙한 신앙생활 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 모든 은혜 내려주신 주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김은화 성도




미국 동성결혼 허용에 대한 단상

by 열린문 posted Jun 27, 2015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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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성결혼 허용에 대한 단상] - 총신대 신대원 김희석교수


1. 미국이 동성결혼을 허용했다. 이제 우리에게로 오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본다. 미국 기독교는, 이 문제에 대해 분연히 반대했음에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왜일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2. 아무리 생각해봐도, 교회의 시각과 일반 사회의 시각 차이가 너무 크다. 교회는 이것이 죄냐 아니냐를 따지는데, 일반 사회는 소수자의 인권 문제로 여긴다. 관점의 차이 정도가 아니라 "topic"의 차이다. 다루는 주제가 다른 것이다. 무슨 책 제목처럼, 화성에서 온 사람과 금성에서 온 사람이 대화하는 것과 같다.


3. 따라서, 기독교의 주장이 잘 먹히지 않는다.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죄다!!!"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일반 사회에는 그런 기독교의 주장을 "소수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입장"으로만 받아들인다. 그들이 주장하는 "동성애는 죄가 아니다"라는 말은, "소수자의 인권을 무시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들을 향해 교회가 아무리 "이것은 죄다!!!"라고 외쳐봐야, 전혀 설득력이 없게 된다.


4. 반대로, "저런 행동은 죄다"라고 크게 외치면, 외침이 큰 만큼, 오히려 동성애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게 된다. 일반 사회는 기독교회의 그런 외침을 "교회는 소수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곳이구나"라고만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5. 그러니, 이런 대화의 방식을 통해서는, 즉 동성애가 죄라고 열심히 외치는 것으로는, 동성결혼의 법제화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나는 열심히 반대했다" "나는 말씀의 기준을 지키자고 주장했다"라는 자기 만족은 남겠으나, 우리가 원하는 결과는 얻기 어렵게 된다.


6. 결국,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한 이 싸움은, 교회가 어떻게하든 불리한 싸움이 될 것이다. 더욱이, 한국기독교는, 미국기독교보다, 일반 사회인들로부터 훨씬 더 신뢰를 못받고 있다. 우리의 상황은 훨씬 더 나쁜 것이다. 한국사회의 보수적인 성격 때문에 동성애 이슈가 이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일뿐, 시간이 얼마 흐르면, 곧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인식되고 토론될 가능성이 높다.


7.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동성애에 대한 논쟁과 토론, 기독교의 입장을 적절하게 전달하는 일들은 해나가야 할 것이지만, 보다 더 중요한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8. 첫째, 기독교가 소수자의 인권에 반응하는 종교인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데, 교회가 제일 못하게 이 부분이다. 그래서 큰 일이다. 작은 자, 힘없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른이 중요한 만큼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고,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손을 내밀고, 여성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세월호 이웃, 노동자들, 즉 사회적 약자인 "을" 편에 서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네 교회는 권력을 좋아하고 큰 것을 좋아하고, "갑"을 더 좋아할 때가 많다. 힘없는 자들은 잘 돌아보지 않는 잘못된 습관이 많다. 이것을 깨뜨리지 못하면, 동성애와의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9. 다시 말해, 기독교회가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모습을 명확하게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면, 그제서야 사람들은 "교회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소수자 인권 문제가 아닌, 뭔가 다른 측면이 있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10. 둘째, 교회는 동성애의 결혼을 반대하는데 힘쓰는 만큼, 성경이 말하는 이성애의 결혼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교회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혼전순결을 지키지도 않고, 불륜도 저지르고, 이혼은 쉽게 하고, 교회 지도자들은 성추행 기사를 쏟아내는데 처벌은 잘 안 되는 상황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이성결혼, 부부사이의 성의 아름다움을 지켜내지도 못하면서,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교리상 맞기는 하나, 실제적인 설득력은 전혀 없다. 성추행을 저지른 목회자가 주일 강단에 올라가서 "동성애는 성적 범죄다"라고 말하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우리네 모습이 바로 이렇다는 점을 뼈아프게 기억해야 한다.


11.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동성애를 막을 수 있을지, 제대로 연구하고 고민하자. 시험공부 하나도 안 하고 "주님은 아십니다"라고 답안지에 썼더니 교수가 "주님은 100점, 나는 0점"이라고 점수를 줬다는 우스개소리처럼, "주님이 막아주실 것입니다"라고 외치기만 하고 실제로 어떻게 동성애를 정말 막을 수 있을지 준비는 하지 않는다면,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12. 결국, 동성애 반대 이슈는, 한국교회가 일반 사회에 얼마나 영향력을 상실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의 민낯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거룩하고 순결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때라야, 우리는 동성애 문제를 지켜낼 실제적 영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진짜 전쟁은, 동성애 찬성론자들과의 전쟁이 아닌, 우리 자신과의 전쟁이다.






부활절을 지킵시다!

by 열린문 posted Mar 27, 2015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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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오래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주일’이 아니라 ‘절기’로 지키고 있다. 다시 말해 주일 하루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절기로 삼아 절기 동안에 묵상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고 다짐하는 영성의 기간으로 삼자는 의미가 또한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기독교 최대의 명절인 부활절이 너무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월요일부터 시작되어지는 고난주간은 남다른 마음으로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난주간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뒤에 고난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한 주간의 일들을 기억하는 주간이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시려고 고통의 길을 택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그 어떤 때보다 더 주님을 대하여 묵상해야 할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고난의 길을 가기에 앞서 기도하셨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도 기도로 한 주간을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한 주가 아니라 철저히 나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한 주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조금 불편하고 힘들고 손해를 볼지라도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생명을 주는 한 주가 되도록 하자! 지난 겨울의 오랜 침묵이 새싹으로 깨어지고 살아났듯이 말이다.




[권성수] 간통제 폐지에 대하여

by 열린문 posted Mar 06, 2015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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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는 개인과 가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과 가정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가정폭력은 처벌하지 않습니까? 폭력은 몸을 때리는 것이라면, 간통은 마음을 때리는 것입니다. 간통 때문에 배우자와 자녀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습니까? 간통제가 있건 없건 간통할 사람은 하고, 간통 안 할 사람은 안 한다고요? 

 

그렇다면 왜 간통죄가 사라지는 날 나이트클럽에선 축배를 들었을까요? 나이트클럽에서 축배를 들었다는 것은 나이트클럽이 사람들이 많이 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이트클럽에 나온 여성이 “난 이제 자유의 몸이야.”라고 했다고 합니다.

간통죄가 폐지되는 날 축배를 들었다는 것은 그 동안 간통죄 때문에 억제당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간통죄가 있건 없건 안 할 사람은 안 하고, 할 사람은 한다는 논리가 말이 됩니까? 
속도제한과 속도측정기를 없애면 어떻게 될까요? 
범인을 잡는 경찰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의 범죄를 억제하는 법과 제도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도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으면, 국가는 하나님의 정의를 시행하는 기관으로 간통죄를 처벌하는 일을 해 주어야 합니다. 간통죄가 오히려 이혼에 이용되고 배우자를 공갈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그렇게 이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법규도 만들면 됩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간통죄를 폐지했다고 해서 간통이 죄가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헌법재판소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과 결혼과 가정을 신성한 축복의 수단으로 만드셔서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가정을 통해서 인류 공동체의 최소 공동체를 이루어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해서 만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보다 성의 순결을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처녀 총각이 좋아하는 사람과 성관계를 맺으면 안 됩니까? 간음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결혼 테두리 바깥의 성관계입니다.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상관없이 결혼 테두리 바깥의 모든 성관계는 간음입니다. 하나님은 처녀 총각을 예외로 두시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간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뉴스미션] “천국 간 적 없다”…<천국에서 돌아온 소년> 저자 충격 고백

by 열린문 posted Jan 20, 2015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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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체험한 간증 수기로 화제를 모았던 <천국에서 돌아온 소년>의 저자가 책 내용이 모두 거짓이라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천국 경험 거짓, 성경이 진리”

"천국은 정말 놀랍고 완벽한 곳이에요. 천사들에 대해 말할 게 있어요. 사고 났을 때 천사들이 아빠를 차에서 끌어냈어요. 예수님이 내 곁에 계셨고, 나는 천국에서 많은 천사들을 보았어요“

끔찍한 교통사고 후 두 달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 깨어난 6살배기 알렉스 말라키가 뱉어낸 천국에 대한 증언이다. 알렉스는 2004년 사고 후 천국 체험담 〈천국에서 돌아온 소년〉을 아버지와 공동 저술해 세상에 내놨으며, 곧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국에는 2010년 말경 번역 출판되어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주인공이 책의 내용이 허구임을 밝혀 충격을 던진 것.

올해 만 16세가 된 알렉스 말라키는 미국 출판사에 지난 주 서한을 보내 "나는 죽지 않았었습니다. 나는 천국에 갔다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천국에 갔었다고 말하면 주목을 받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천국에 다녀왔다고 주장했을 때까지 나는 성경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내 거짓말로 이득을 얻었습니다. 내가 쓴 책을 파는 사람들은 회개해야 합니다"라며 사실상 판매 철회를 요청했다.

알렉스의 공개편지에 관해 틴데일하우스 출판사는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알렉스의 어머니이자 케빈(공동저자 아버지)의 부인인 베스가 그 책에 대하여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고, 그 책에 부정확한 것들이 들어있다고 지적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차례 이상 케빈과 베스, 알렉스와 그들의 에이전트에게 부정확한 부분들을 바로잡기 위한 회합을 요청했지만, 베스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건 직 후 틴데일하우스 측은 책을 절판하는 한편 판매분을 회수하기로 했으며, 미국 내 기독교서점들도 판매를 중단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자의 고백으로 〈천국에서 돌아온 소년〉은 진실을 담은 신앙서적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 출판사 측 "온오프라인에 판매 중지 요청"

또한 한국 측 출판사인 크리스천석세스도 온오프라인 서점에 판매 중지를 요청한 상태다.
 

19일 크리스천석세스 김일중 실장은 "홈페이지 상품코너에 〈천국에서 돌아온 소년〉 판매중지를 알려 놨다. 그리고 기존 책을 수거하고 있다. 서점들도 진열장에서 더 이상 내놓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틴데일하우스가 지난 17일 이메일로 상황을 설명과 함께 폐기를 요청해왔다. 당시 미국 뉴스에도 나오고 틴테일하우스는 기독교 출판사로서 좋은 평판을 갖고 있는 곳이기에 충분히 검증된 것으로 받아들였다“면서 ”이제 저자의 고백으로 밝혀진 이상 더 판매 한다는 것은 잘못이란 판단“이라고 전했다.

한편 왜 알렉스가 오랜 시간이 흘러 뒤늦게 진실을 고백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지만, 그는 현재 교통사고 장애를 입은 채 오하이오 자택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책을 공동 저술한 아버지 케빈은 최근 아내와 이혼한 상태다.

알렉스의 어머니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지금까지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면서 "알렉스는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 착한 아이로 끝까지 옆에서 지켜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알렉스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성경만이 유일한 진리의 근원”이라며 “사람에 의해 쓰인 글은 오류가 없을 수 없다. 이 같은 책들이 더 이상은 판매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희석] 12월 전쟁설이 성경적 예언이 아닌 이유

by 열린문 posted Nov 22, 2014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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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전쟁설이 성경적 예언이 아닌 이유]


1. 12월 전쟁설이 성도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12월 전쟁설, 즉 금년 12월에 남북 전면전이 일어난다는 예언은 “성경적인 예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는 이런 종류의 예언이 나오지 않는다.


2. 성경에 나오는 예언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그 첫째는, 좁은 의미의 “예언”인데, 이중 이번 이슈와 관련된 것으로 “심판에 대한 예언”이 있다.

...

   1) 이런 예언은, “현재 상황”에 대한 예언 즉 즉 선지자 당대의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향해 주어진 예언이다.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요나 등등 대부분의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런 범주에 속한다. 이런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의미의 예언이 아니었다.

   2) 이런 심판 예언의 목표는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는데 있었다. 그래서 심판을 예고하더라도,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 심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요나이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했지만, 백성들이 회개하자, 하나님은 니느웨를 용서하시고 심판의 뜻을 돌이키셨다.

  3) 즉 “심판 예언”의 핵심은 “언제” 그 일이 이루어지느냐가 아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예언을 들을 때에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 일이 일어날 것이냐의 여부”가 결코 아니다. “회개해야 할 부분을 회개하는 것”이 해야 할 일이다.


4. 예언의 두 번째 종류는 “묵시”라는 예언이다.

  1) 묵시란, 다니엘서와 계시록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장차 일어날 종말의 심판과 구원을 상징성이 강한 언어로 표시하는 장르를 말한다. 이 묵시 장르에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과 숫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한 때 두 때 반 때,” “1350일” 등이 그 예이다.

  2) 이 “묵시”의 글들의 전형적인 목적은, “회개요청”이 아닌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하는데” 있다. 즉, 지금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심판이 임한다는 내용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다니엘처럼, 세 친구처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져서, 풀부물과 사자굴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면, 악한 세력의 위험으로부터 결국 승리한다는 내용인 것이다.

  3) 따라서, 이런 묵시의 글들에 나타나는 “시간적 표현” 및 “숫자”들은, “구체적인 어떤 시점”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계속 반복하여 등장할 여러 가지 일들을 가리키는 “상징”일 뿐이다. 기독교 역사상,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숫자들을 실제 역사의 시점에 대입시키려는 시도는 백프로 실패했다. 원래 한 역사적 시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금 등장할 악의 세력에 대하여, 끝끝내 믿음을 지켜 내라는 긍정적인 권고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5. 이제 12월 전쟁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이 설의 핵심은, 적어도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12월”에 전쟁이 난다는데 있는 것 같다. 한국교회가 죄를 지었기에 심판이 임하는데, 그 시간이 “12월”인 것이 계시되었다는 것이다. 위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경에 이런 종류의 예언은 없다.


6. 즉, 시간을 정해놓고, 그 때 심판이 임한다고 말하는 종류의 예언은 성경에는 없는 종류의 예언인 것이다. 요나의 경우, 40일이 지나면 성이 무너진다고 했지만, 핵심은 “40일”에 있지 않았고 “백성들의 회개여부”에 있었다. 즉, 예언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시점”은 핵심이 아닌 것이다.


7. 더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구약의 “심판 예언”과 “묵시 예언”은 그 예언의 모든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서 이미 성취되었다는 점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대신 심판받으셨고 (심판 예언의 성취), 죽음을 이기고 부활로 승리하셨기에(묵시 예언의 성취), 모든 것은 이루어졌다.


8.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수납하여, 심판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죄와 싸우며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나타나더라도, 두려워말고, 타협하지 말고, 믿음의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다.


9. 따라서, “2015년 12월”이라는 시점을 강조하면서 두려움을 자아내려는 예언은,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은 종류의 예언이며, 따라서 비성경적인 예언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10.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예언이 “구체적인 심판의 시점”을 가리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려워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피해 도망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믿음을 가진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두려워하는 불신앙의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11. 12월에 전쟁이 발발할 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 만약 타락한 한국교회의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이 두렵다면, “12월 운운”하는 이야기에 휩싸일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회개하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회개하지 않는 목회자가 진정 회개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며,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을 부여잡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세상과 타협하려 하지 말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며 십자가의 도를 걸어야 한다.


12. 다시 말해, 이런 전쟁설이 일어날 때, 진정한 성도가 보여야 할 반응은, 그 시점이 언제냐고 물으며 두려워 떨고 도망가려는 모습이 아니라, 느헤미야처럼 동족의 죄를 껴안고 회개하며 문제의 현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모습, 다니엘처럼 타협하지 않는 믿음으로 사자굴을 감수하려는 신앙의 모습인 것이다.


13. 그러니, 12월에 전쟁이 난다는 소문에 휘둘릴 것이 없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언제” 내려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모습으로 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헛된 소문에 흔들려 오늘의 삶을 놓치지 말고, 진리의 길을 걷기 위해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




[김희석] 추수감사절에 대한 단상

by 열린문 posted Nov 15, 2014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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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에 대한 단상]


1.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이 성경적이냐에 대한 질문들이 있어서 제 생각을 간단히 올립니다.

2. 신약교회인 우리가 현재 지키는 절기들은 성경 본문 자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닙니다. 즉 성경의 명령에 의해서 지키는 절기는 없습니다.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는 오히려 신학적 이유, 즉 성경을 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한 결과 지키게 된 절기들입니다.

3. 구약에는 세 가지 중요한 절기가 나옵니다. 유월절, 칠칠절(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장막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을 굳이 연결시키려면 초막절과 연결이 될 것입니다.

4. 그런데, 이런 모든 절기를 비롯하여, 구별되게 지키는 날들, 즉 안식일, 안식년, 희년 개념은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사건으로 모두 성취되었기에, 어떤 날을 지키는 절기로서의 개념은 종결되었습니다.

5. 예를 들면, 신약교회는 유월절을 유월절로 지키지 않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고난일(성금요일)로 지키고, 부활절로 바꾸어 지킵니다. 유월절 자체를 명령으로 보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이 가리키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의미를 받아서 지키는 것입니다.

6. 그러다면 추수감사절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니, 그냥 폐지하고 지키지 않는 것이 좋을까요?

7.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추수감사절은 신약시대에서는 더 이상 율법의 명령이 아니므로, 율법주의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방식이 나라마다 교회마다 다릅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추수감사절은 Thanksgiving Day가 되며 주일이 아닌 평일에, 교회가 아닌 각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8. 두번째, 그러나, 추수감사절이 율법의 명령이 아니므로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역시 올바른 해석은 아닌 듯 합니다. 왜냐하면, 초막절의 신학적 의미가 추수감사절로 분명히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 초막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것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초막생활을 하는 절기이며, 동시에 지난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풍성한 곡식을 거두게 하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즉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삶의 필요를 공급해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매년 정기적으로 지키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신앙을 배우게 한 것입니다.

10. 이러한 초막절의 의미를 우리의 삶으로 가져와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훈련하게 하는 의미로, 추수감사절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되며, 그런 의미에서 추수감사절은 매우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1. 만약 추수감사절과 같은 절기가 없었다면, 한 해 동안 복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삶을 돌아보는 신앙을 훈련받기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송구영신예배의 경우, 드리지 않아도 율법에 불순종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매우 좋은 신앙생활을 우리에게 연습시켜 주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12. 물론, 추수감사절을 통해서 교회가 성도들에게 헌금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추수감사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교회가 헌금을 어떤 방식으로 걷고, 그리고, 더 중요하게로는, 헌금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 집행하느냐에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13.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물결 뒤치며" 라는 찬양을 들을 때, 비록 우리가 예전처럼 농촌중심 사회가 아니어서 추수감사절이라는 말이 우리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한 해 동안 나의 삶에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마음에 가득 올라오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현대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밀레의 만종을 보면서 느끼는 감동과 같다고 하겠지요.

14. 만약, 추수감사절은 현대사회에 더 잘 적절하게 변형하여 지키자고 한다면, 그런 논의는 적극적으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추수감사절이 다음 세대에게 잘 다가갈 수 있도록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내고 시도해보아야 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다만, 추수감사절이 신약시대에,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지키면 안 되는 율법주의적인 잘못된 성경해석이라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뿐입니다.

15. 우리에게 주신 삶의 은혜에 대해서 더 깊이 감사하며, 그분의 손길을 돌아보고, 주님의 제자로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깊어지는, 참된 감사절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일년 365일을 감사절처럼 지낼 수 있게 하기 위해, 일년에 하루를 지키는 감사절이 좋은 훈련의 기회가 되게 합시다.

*이 논의는, 진리와 거짓의 문제를 다루는 논의가 아니라, 어떻게 신앙을 훈련할 것인가에 관계된 목회적인 논의입니다. 다양한 견해들을 환영합니다만, 서로의 견해를 존중하는 한에서 댓글의 대화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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